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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리, 조선 시대 궁궐의 숨은 일꾼

by besoop 2024. 5. 14.

조선 시대 궁궐에는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소개할 무수리는 궁궐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였는데요. 무수리는 물 긷는 일을 주로 담당했기에 수사(水賜)라고도 불렸지만, 물 긷는 일 외에도 아궁이에 불을 때거나 잡다한 막일까지 도맡아 했습니다.



궁중에는 우물이 전각 내부에 있지 않고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무수리들은 매일 물을 길어 날라야 했죠. 무수리는 비자나 궁녀와는 달리 궁궐 안에서 생활하지 않고, 신분패를 차고 출퇴근을 했다고 합니다. 무수리 중에는 결혼하지 않은 어린 소녀도 있었지만, 결혼에 제약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나이가 차면 언제든 결혼할 수 있었고, 심지어 태종 시대에는 남편이 있는 무수리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죠.



하지만 《경국대전》에 따르면 출궁한 무수리는 관리와 결혼할 수 없었다고 하니, 어릴 때 궁궐에 들어와 비자처럼 생활한 무수리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수리의 신분은 천민일 수도, 평민일 수도 있었는데요. 상궁들이 특별한 기준 없이 힘 좋은 아낙들을 골라 무수리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무수리들은 궁 내부에서도 서열 관계가 있었고, 수사간(水賜間)이라는 곳에서 기거했습니다. 초기에는 출퇴근을 했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궁궐 사정이 외부에 알려지자 행동 반경이 궁궐 안으로 제한되기도 했죠.



구한말 궁인의 증언에 따르면, 무수리는 궁녀와 달리 긴 저고리를 입었고, 머리는 둥글게 틀어 올렸다고 합니다. 저고리와 치마는 연두색과 청색 중간 색이었고, 허리에는 널찍한 허리띠를 둘렀죠. 허리띠에는 신분증인 패를 달고 다녔습니다.



한편, 야사에는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무수리 출신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천민이나 노비 출신 궁녀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궁녀는 노비를 차출해와야 했기 때문이죠.



이처럼 무수리는 조선 시대 궁궐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숨은 일꾼이었습니다. 궁궐의 물 긷기, 불 때기, 잡일 등을 도맡아 하며 궁궐 운영에 힘썼던 무수리. 그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조선 왕실의 일상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